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Pursasive essay

어머니와 행운의 숫자

1분 1초가 아까운 고시생이다 보니 내겐 식사라는 게 참 계륵같다. 안 먹자니 공부의 능률이 안 오르고, 먹자니 시간이 아깝고. 맨 처음에는 식사 시간마다 집에 들러서 어머니께서 해주는 밥을 먹고 나왔다. 그런데 독서실과 집 사이의 거리가 멀다보니 식사 한 번 할 때마다 2시간을 까먹게 된다. 게다가 어머니는 네가 집에서 돈도 안 벌어다주는 주제에 밥을 처먹으니 밥값이 너무 많이 든다며 불평을 했다. 그래, 나는 백수에다 돈도 못 벌어오는 버러지 같은 자식이다, 라고 쏘아붙이기에는 나는 너무 약자였다. 그래서 나는 집에서 다 썩어가는 바나나, 무딘 오렌지, 먹다 남은 우유를 탈탈 긁어모아 도시락을 싸 그걸로 하루의 식사를 대체했다. 어차피 내겐 공부가 제일 중요해야했고 집까지 먹으러 가기도 귀찮았다.

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는 직접 도시락을 싸 주시기 시작했다. 솔직히 별로 달갑진 않았다. 오렌지는 1000원이고 두부는 500원이며 계란은 2개에 150원이니 너는 여러가지로 참 부모에게 손 벌리는 부끄러운 자식이구나라는 잔소리를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. 게다가 인스턴트 입맛에 길들여진 나는 독서실 식사공간에서 비싼 간식ㅡ2000원 짜리 컵라면이라든지, 버커킹이라든지ㅡ을 먹는 사람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. 그래서 나는 내가 사먹지 않는 것만으로도 부모님께 효도하는 거라며 뻔뻔하게 큰소리치고는 도시락을 낚아채 집을 나서곤 했다.

어느 날 어머니는 유부초밥을 싸주시기 시작했다. 나 먹이는 것에 돈을 아까워하시는 어머니라 나는 집에 유부초밥 유통기한이 다 되었구나 생각했다. 그런데 하루 이틀이 아니라 매일매일 싸주셨다. 일부러 나를 위해 사오는 건가? 나는 어리둥절했었다. 하지만 나는 을이요 어머니는 갑. 나는 주는 대로 퍽퍽 먹었다.

"유부초밥 먹으면서 몇 개인지 세어봤니?"
아침을 먹다가 뜬금없이 들린 질문. 먹는데 그런 걸 왜 세나. 퉁명스럽게 대답했다. 나는 그것이 이번 달 최대의 예산치라든지 그런 해설을 기대했다. 어머니는 웃으면서 이렇게 이야기했다. 정답은 7개. 어머니는 시험에 꼭 합격하라며 일부러 럭키세븐으로 맞추고 있다고 하셨다. 나는 밥을 물고 우물거렸다. 애초에 나는 그런 미신을 믿지 않을 뿐더러 합격은 내 노력여하에 달려있었다고 생각해 의미없다고 대답을 하려고 했었다. 하지만 이런 생각도 들었다. 외롭고 고달픈 이 고시생활에, 나만 애쓰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, 여기, 나를 위해 신경쓰는 사람이 또 있었네. 하고.

"고마워!"

낯부끄럽게도 나는 이 말 밖에 하지 못했다. 하필 그 날은 어버이날이었는데도. 사실 어머니와 나는 사이가 마냥 좋지만 은 않다. 엄청난 갈등이 있었고, 자주 집을 나갈 생각을 했던 적도 많았다. 그래서 어머니가 날 응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납득을 못했던 것 같기도 하다.

식사시간이 계륵이라고는 했지만, 사실, 산소호흡기같기도 하다. 답답한 독서실을 나와서 유일하게 쉬고, 바깥 공기를 마실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니까. 그런 시간에, 어머니가 싸준 도시락을 보면서 나는 어머니의 마음까지도 음미하곤 한다. 그렇게, 어머니는 내 육체적 허기와 심리적 허기를, 메워주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서.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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